[진짜 자기계발] 감정코치가 알려주는 감정관리법 7 –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게 꼭 문제라도 되는 건가요?”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게 꼭 문제라도 되는 겁니까?

아버지는 항상 들어오지 않으셨습니다.

저녁 9시, 불꺼진 아파트 철문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던 유년시절의 한 순간이 떠오릅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밉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버리고, 모든 것을 내 팽개친듯, 자신의 삶을 선택해버린 어른의 선택에 대항할 힘조차 없는 나약한 내가 싫었던 것을 그때의 나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미운것은 아닌 줄 그렇게 착각했습니다.

녹그릇에 담긴 물이 서서히 끊기 시작하면, 식을줄을 모르고 뜨거워집니다.

제 마음은 마치 녹기 그릇에 담긴 뜨거운 물처럼 시퍼렇게 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시간이 지나 커버린 장성의 내면에 끓는물은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내 행동, 내 삶의 패던 하나하나의 서슬담긴 시퍼런 기준점은 한 사람의 분노를 대변하고 있는듯 하였습니다.

“아버지 처럼만은 살지 않을꺼야.”

이 다짐하나로 나는 살아왔습니다.

홀 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라나면서,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고통이 내 삶을 포위할때마다 나는 속으로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나는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을거야.’

아버지와 학력의 차이를 깨고 싶어서, 어려운 국가고시의 시험을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고시를 낙방하고 나서도 아버지를 닮지 않기위해서 저는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아버지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찾아 떠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그림,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악, 책..

모든 것들을 외면하면서 나는 아버지와 닮지 않았다는 것을 강요해야만 내 몸안에 끓어넘치는 용광로의 화점을 줄여나갈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성인이 된 저는 아버지를 만나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이미 내 몸이 어른이 된 저는 아버지를 이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내가 가진 착각은 썩어가는 음식의 표면처럼 서서히 내 삶에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용서한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하는 척을 해야만 한 것이었죠.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저는 자식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내가 나의 아버지처럼, 똑같이 아이들을 버리고, 외면하며 사는 사람이 될까봐.. 그런 저를 스스로 두려워하였습니다. 저는 이렇듯 아주 사소한 것부터 내 인생의 큰  영역까지 아버지가 준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었습니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근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답변이 50%이상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부모의 삶에서 행복과 사랑을 제외한 많은 것들을 알아버린 사람이었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 사실을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하면서 잘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상처로 부터 자유롭지 못함은 단연코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활의 패턴과 삶의 양식이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친구들은 평소에 전혀 이 부분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있듯이, 행복의 이유를 알지못한 이들은 그 원인이 모두 개별자의 몫이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를 이해한다는 어려운 과정을 포기하고, 자신의 삶이 부모와는 남다르게 살기만을 바라는 꼴이 되었습니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해, 전해주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안타까워하며 ‘너 만큼은 나와 같이 살지 말라’는 포기섞인 이야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의 패턴이 됩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우리 삶에 깊은 패턴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죠.

생물학적으로도 우리는 부모와 거의 일치한 유전적 성향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부모와 반대의 삶만을 산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그것은 내 삶의 절반을 툭 짤라 버리는 무척이나 어리섞은 행동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내 안의 숨겨진 다양한 잠재력을 포용하고, 세상에 다양한 가능성의 여지를 열어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삶의 어느 부분을 버린다는 것은 내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의 여지를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즉, 부모님처럼 사는 것이 싫다! 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그들이 싫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안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경계를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부모님처럼 사는 건 나쁜 것이고, 부모님처럼 살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 되는 경계를 만든다는 것은 내 인생의 나의 행동에도 엄청난 제약을 주는 꼴이되는것이지요. 

이부분은 예를 들어 더 깊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여기 한 사내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어릴적부터 너무나도 권위적인 아버지가 있었어요.

그는 권위적인 아버지의 행동을 보며 늘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절대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이런 다짐을 합니다.

성인이되고, 아버지와 반대의 삶을 살려는 그에게 스스로가 아주 작게라도 권위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느껴지면 그는 스스로에게 큰 거부감을 느낍니다. 심지어 스스로 권위적인 모습이 나올 때마다,자기 자신을 자책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관계에서도 어려움이 나옵니다.

부하직원에게 충분히 요청하고, 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상대가 나를 권위적이라고 느끼지 않을까? 하는 고민때문에 요구가 어려워지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지요.

내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으니, 내 행동에 스스로가 제약이 생기고, 그렇게 나를 질책한다면 당연히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와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특별한 예시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모습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처럼 살기 싫어서 부모와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의 내면에 가득 담긴 부모의 모습을 저주하는 그녀는 진심으로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비슷한 에너지는 비슷한 에너지를 끌어들이기 시작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녀 또한 그녀와 비슷한 상처를 가진 페르소나의 남성을 만날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거짓은 거짓을 부르고 외면은 외면을 부릅니다. 

나의 소중한 인생은 누구의 탓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듯,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인생을 온전히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 피해서는 안되는 첫번째 단계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의 인지 입니다.


부모를 진심으로 용서한다는 것.

부모를 용서한다는 것은 1차적으로 그저 부모를 용서하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이것은 나의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기꺼이 손을 뻗어보는 1차적인 행동이며, 무의식적으로 가득차여 있는 내 삶의 부정을 끄집어내는 일이며, 내가 부모로부터 영향받아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세계를 부쉬어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인생을 새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내 삶에 고리타분하게 잡혀져있는 패턴을 부쉬어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패턴을 깨기위해서는 그 원천을 향해 가야합니다. 

소방관들이 처음 발화지점의 불씨를 찾아 완전소화를 노리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상처의 끝을 찾아 그 상처에 대한 치유를 진행해야하는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용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 또한 순간랩을 찾아와주는 친구들에게 아버지를 쉽게 용서하라고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다만 그들의 삶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본인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작은 사실들을 지속적으로 깨닫게 해줍니다. 

서로의 상처를 바라보면서, 내가 받은 아버지의 아픔의 깊이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변화시키려는 용기가 생긴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설프게 성인의 머리로 이미 나약해져버린 부모님들을 용서하려 하지 마세요.

용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 깊은 곳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미 나약해졌기에, 볼품이 없고, 힘이 부치기에 과거의 상처를 덮어주려 하지 마세요.

당신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는 여전히 화가 나있고, 세상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설프게 그들을 용서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있다면,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 한 사라진것이 아닙니다.

(그런다고 지금의 부모에게 화를 내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당신이 하는 무의식적인 작은 행동, 일상의 반복되는 패턴, 삶의 굴레와 같은 고리를 깨기위해

과거의 나, 그때의 나로 돌아볼 수 있는 감정일기와 코칭을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