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자기계발] 부정적인 마음을 바라본다는 것

부정적인 사람이랑 어울린다는 것과 내 부정은 인정한다는 것의 차이

“부정적인 사람은 어울려서는 안된다.”

“쟤는 매사가 부정적인 성향이 강해.”

“부정적인 사람이 뭐 하나 제대로 하는것을 본적이라도 있니?”

우리는 살면서 긍정적으로 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건강하게 살기위해서 삶을 긍정적으로 보고, 

건설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것과 스스로의 부정을 인정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내 삶에 
모든 부정을 세상에 표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나 자신의 긍정은 정말 중요합니다.

저 역시 누구보다 삶의 에너지를 중시하고, 그 에너지를 위해서 많은 시간을 쏟고 있듯이,

긍정은 참 행복한 삶의 기본이 맞습니다. 그러나 부정을 겪어보지 않으려는 무조건의 긍정이 있어요.

뒤도 돌아보지 않는 긍정. 막연한 긍정.

그리고 그 끝을 파다보면 우리는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교육을 배워왔기에, 내가 그렇게 살아가고만 있다는 것을 말이죠.

이것은 좀 더 근원적으로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볼 여지가 많은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인생은 모순으로 시작된다.

나는 정말 저 사람이 이해가 안돼? 왜 내 인생에서 나타나고 xx이야.

살다보면 말이죠. 우린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순적인 상황에 빠져야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상황이 참 견디기 어렵습니다. 

괴로운 상황속에서 모순의 순간에 있기를 인간이 죽기보다 싫은 것처럼

우리는 모순의 상황을 힘들어합니다.

나는 긍정적으로만 반응하는데, 일괄적으로 받아주지 않는 타인을 볼때

우리 내면에는 알 수없는 깊은 분노가 올라옵니다.

모순의 사람들을 볼때 신기루처럼 나의 긍정은 분쇄기의 종이처럼 찢겨져 나갑니다.

그러나 사실은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모순을 지닌 그들의 문제가 아니에요.

부정을 바라보는 힘조차 없는 나의 나약함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아주 어렸을때부터 엄마의 보호속에서 자랐습니다.

내 머릿속으로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내 몸과 마음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 거에요.

그때 우리의 어머님은 우리를 분명 감탄하는 눈으로 바라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한가지가 있어요.

우리가 부정의 행위를 할때에도 어머니는 우리를 감탄으로 바라보셨다는 것이지요.

소리내어 울거나 바지에 오줌,똥을 싸는 일에도 우리 부모님은 한결같이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칭찬해주고 감탄해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부모의 감탄을 먹으며 자라난 것입니다.

여기에는 큰 가르침이 존재해요.

세상은 우리의 모순을 인정해주는 부모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 말이에요.

이제 다시 한번 생각해볼까요?

긍정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순을 수용하지 않는 긍정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가식에 가까웁니다. 가면에 가까운 긍정은 내 인생에 실제로 도움되지 않습니다. 

내 모순을 덮어버리고서 막연한 긍정에 빠진다면, 언젠가 쇼윈도에 공연을 끝낸 연극배우들이 느끼는

두터운 가면의 허무함보다 더 깊은 회의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웃어야 한다는 그 말. 그 전에 울어도 된다는 이 말.

많이 웃어야 합니다.

삶의 웃음은 우리의 에너지의 원동력이니깐요.

그런데 이것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때론 울기도 하고, 슬픔에 빠지기도 하고 마음껏 불안해지기도 해야 합니다.

내 인생의 힘든 부분을 긍정을 위해서 흘리듯 스쳐가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작은 소리를 찾아서 내 안의 부정이 밀려오면 그 부정을 냉철하게 바라볼줄 알아야 해요.

두려움, 불안, 적개심, 외로움, 그리움, 무기력, 공포, 소외, 허무, 슬픔, 분노, 열등감, 억울함..

우리 안에는 80여개가 넘는 다양한 감정이 존재합니다. 

웃음과 긍정만을 생각하는 강박은 내 몸 안에 소중한 많은 것들을 외면하도록 조장합니다.

그렇게 사회적 기술만 증가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실제로 저는 교육현장에서 반쪽자리 사람을 만납니다.

그들은 제 앞에서 웃습니다. 긍정입니다. 밝습니다.

하지만 크게 웃기만 합니다. 긍정이기만 합니다. 밝기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들과 만나면 힘들어집니다.

에너지가 떨어져버립니다.


빠가야로 조센징..

일본에 간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갔을때 친절하기만 한 일본사람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두번째 갔습니다.

여전히 친절한 그들이 반갑습니다. 모두가 산뜻하게 웃습니다. 

세번째 가고, 네번째 갑니다.

같은 패턴속에서 그들의 미소는 비슷합니다. 언제나 밝은듯 적당한 미소를 보입니다.

그러다 문득, 물을 뜨러 들어간 주방 안에서 기분나쁜 소리를 듣습니다.

1분전까진 미소를 보이던 사장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빠가야로 조센징..”

그 다음말은 알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그 부정적인 느낌만은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밝기만 하라고 훈련 받은 듯한 그들의 미소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는 친절하기만 한 일본에 가지를 않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밝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가진 감정에 솔직할 수 있다는 것. 

부정을 이끌어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성장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부정의 감정이 나쁜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분노는 사람의 에너지의 근원이 됩니다. 분노가 많은 이는 카리스마가 넘치죠.

불안은 사람에게 디테일의 힘을 주는 원천이 됩니다. 불안한 이들에게 완벽주의가 많은 이유입니다.

두려움은 사람의 안정적인 모습을 이끌어줍니다. 

억울한 사람은 인내력이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외로움은 타인에 대한 경청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역지사지의 힘을 줍니다.

부정의 감정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이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은 나의 에너지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부정이 밀려온다고 억제하거나 회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예스맨이 되거나 스마일맨이 된다고 해서 세상이 행복해지지만은 않습니다.

각자에게 맞는 부정의 감정을 털어내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부정의 감정을 무조건적으로 피하려고만 하지 않는 그런 자세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껏 부정을 관찰하라.

어른이 된다는 것은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상황속에 다양한 나를 인정하고 
관찰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관찰하라고 합니다.

관찰은 해석이 아닙니다. 그저 보는 것입니다. 판단을 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면의 긍정을 느껴야만 한다는 압박도 없습니다.

내면의 부정을 억눌르거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나를 바라보세요.

내가 부정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조금 더 자세히 나를 관찰하세요.

부정의 안에 나를 마음껏 보고 생각하고 글로도 써보세요.

이런 과정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보면, 여러분은 어느새 깨닫게 되실거에요.

내가 어느새 감정에 지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아직은 힘들고 이해하시기 어려우실거에요.

부정을 바라본다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 교육이 지금껏 제대로 가르쳐주지않았던 불편하지만 건강한 진실을 계속해서 

글을 통해서 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나에 대한 관찰은 멈추지 마세요.

나에 대한 이해는 계속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우선적인 일이기 때문이지요.